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사건의 배경 === [[존 윌크스 부스]]는 남부 출신의 인기 배우였고 링컨에게 극렬한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다. 당초 부스의 목표는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와 맞교환하는 것이었다. 1865년 3월 4일에 열린 링컨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에 부스는 애인 루스 헤일의 도움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이후 부스는 "이 날에 링컨을 죽일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링컨은 인기 배우인 부스를 뒤풀이 파티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부스는 "링컨하고 같이 식사하느니 돼지랑 식사하는게 낫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3월 17일 부스는 링컨 대통령이 캠벨 [[미합중국 육군]][[군병원|병원]]에서 연극 공연을 볼 예정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워싱턴 털락에 있던 식당에 있다가 돌아오는 링컨을 납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링컨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내셔널 [[호텔]]에서 [[육군]] 140인디애나[[연대]]가 탈취한 남군 [[군기]]의 송정식에 참여하는 바람에 부스의 납치 시도는 실패했다. 얄궂게도 부스가 내셔널 호텔로 돌아왔을 때 링컨과 대면했다(...).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군에 항복하면서 사실상 [[남북전쟁]]은 끝났다.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를 구해내고 남군의 위기를 해소하겠다던 부스의 계획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링컨 대통령은 연설에서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생각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부스는 이를 듣고 링컨과 몇몇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했다. 4월 14일 부스는 조지 아트제로트와 데이비드 헤롤드 등의 몇몇 공모자들과 모여 링컨이 포드 극장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날 링컨 대통령, 부통령 존슨,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등을 죽이기로 결정랬다. 결과적으로 링컨만 사망해서 링컨만을 표적으로 한 음모로 착각하기 쉽지만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이라는 행정부 최상위 3명을 모두 죽이고 그랜트 장군도 죽이려는 대담하고 큰 계획이었다'''. 만약 성공했으면 리 장군의 항복으로 종전 상태에 가까워졌던 남북전쟁은 행정수반들을 잃은 북군의 혼란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군의 주요 군사력은 붕괴되어 반항은 얼마 못 갔겠지만 원래 역사보다 더 험난한 재건 과정을 맞이했을 것이다. 부통령 존슨에 대한 암살은 암살자 조지 아트제로트가 긴장과 두려움에 술을 마셨다가 고주망태 상태로 암살도구를 잃어버려서(...) 실패했다. 이후 조지 아트제로트는 붙잡혀서 [[교수형]]당했다.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는 9일 전인 4월 5일 마차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한 상태였다. 암살자 루이스 파월은 링컨 암살과 비슷한 시간대에 슈어드의 자택에 의사인 척 들어가 칼로 살해하려 했으나 슈어드의 아들에게 들켜서 저지받고 그걸 뚫고 슈어드를 찔렀지만 슈어드가 부상 때문에 착용했던 턱 보호대 덕분에 뺨에 상처만 입힌 채 실패했다. 이후 파월 또한 체포되어 교수형당했다. ~~이후 슈어드가 알래스카 산거 생각해 보면 죽었으면 알래스카는 누구 땅이 되었을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